우리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사춘기 시절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어른이 된 이후에도 이런 생각의 끈을 놓친 않지만 살아가기 바쁘기 때문에 잠시 치워두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왜”라는 의문형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원리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대상에 대한 그저 호기심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존재”라는 것은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한번도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의 모습은 그저 암흑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타인이 알려주는 소리에 의존해 상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나와 너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을 ‘우리’라고 지칭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의 기준점은 ‘인간’이라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의 의문에 대한 해석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지금 있는 다수의 인간이 필요한가. 그것이 이 질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왜’라는 단어의 의미는 궁금증, 이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존재하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문제입니다. ‘그저 있다’ 혹은 ‘그저 존재한다’라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앞에서 말한 이유는 필요성에 대한 부분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한가요.
필요하다는 의미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연필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지우개는 필요한 물건입니다. 지우개는 왜 존재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연필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로 일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필요성의 적절한 예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의 존재,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논쟁에는 대상이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흘려버렸다는 것이 옳죠.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니며, 어떤 대상에게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연환경의 측면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